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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Gaeddong-思惟

미국인의 역사

미국인의 역사 A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폴 존슨

미국인 자신들과 인류 모두에게 이처럼 커다란 교훈을 간직한 나라의 역사는 없다. 미국의 역사는 3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국가는 그 성립의 부당성을 극복하고 도덕적 목표나 행동을 통해 그것을 보상할 수 있는가? 국가는 모두 전쟁, 정복, 범죄로 탄생하지만 대개 아득히 먼 과거가 그 사실을 가리고 있다. 하지만 미합중국은 초기 식민지 시대부터 생생한 역사 기록의 바탕 위에서 토지권리증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누구든 거기에 묻은 얼룩을 보고 비난할 수 있다.

토착 민족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았으며 노예로 삼은 인종들의 땀과 눈물로 자급자족을 확보했던 것이다. 이런 중대한 잘못은 역사의 심판대라는 저울에 올려 정의와 공평을 지향하는 사회 건설에 의해 균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은 그런 행동을 취했을까? 건국 당시의 원초적인 죄를 속죄했을까?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에 열쇠를 제공한다. 국가를 만들 때 이상이나 이타주의 · 완전한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욕구-를 활기찬 사회 건설에 필요한 탐욕이나 야망과 잘 통합해 낼 수 있었을까? 미국인은 과연 그것들을 올바르게 통합했을까? 자기 이익의 욕구보다 정의를 앞세우는 국가를 창조했을까?

 

세 번째로, 미국은 원래 비현실적인 언덕 위의 도시’(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마태복음 제514, 청교도 지도자 존 윈스럽이 1630년 이민 당시 신세계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자고 주창하면서 사용한 문장) 건설을 목표로 했으나 전 세계의 모델이 될 인민의 공화국을 설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그들은 그 대담한 주장을 달성했을까? 정말로 인류를 위한 본보기를 증명해 보였을까?

중략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애초에 금을 찾아 대서양을 건넜다.

 

북대서양의 기상 현상을 이용한 카나리아 제도의 경험을 살려서 콜럼버스는1492년 서반구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콜럼버스의 탐험은 아메리카 사업의 국제성을 잘 보여줬다. 콜럼버스가 활동한 곳은 에스파냐의 세비야지만 고향은 이탈리아의 제노바였고, 국적은 당시 동부 지중해의 여러 섬을 거느린 제국이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시민이었다. 대서양 횡단 항해 자금은 콜럼버스 자신을 비롯한 세비야 거주 제노바 상인이 댔고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이 추가로 부담했다. 바로 그해 일찍이 에스파냐 군대가 그라나다를 함락한 뒤여서 여왕은 많은 현금을 확보하고 있었다.


미국인 폴 존슨은 이런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이 속한 나라, 미국의 역사를 담담히 서술했다. 아메리카 토착민, 인디언을 멸종시키며 세운 자유의 나라, 정의의 나라는 과연 현시대에 '팍스(Pax) 아메리카나'를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가?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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